화가 장두건 (1920. 1. 3 生 호적) 1937∼40 동경태평양 미술학교에서 수학 학들의 낙원 /2000/200P/oil on canvas 식탁위의 장미/1959/25F/oil on canvas/개인소장 반월단지의 4월/1969/10F/oil on canvas 강화도의 마을의 봄/1978/10F/oil on canvas 백자위에 모란/1980/10F/oil on canvas/개인소장 장미의 꿈 1/1990/100F/유화, oil on canvas 봄이오면 B/1992/10F/oil on canvas 초봄(조춘)/1985_1992/50F/oil on canvas 토기와 코스모스/1995/10F/oil on canvas
병들이 있는 정물/1962/25F/oil on canvas/개인 소장 백화/1959/25F/oil on canvas/미국, 개인 소장 화단의 모란/1975/10F/oil on canvas/일본, 개인소장 파리의 다사스 거리/1958/60F/ oil on canvas/개인 소장 내가 처음으로 장선생을 만난 것은 당시 Paris에 체불 한국인 화가 작품전이 열렸던 전시장에서였다.
식탁 위의 장미/1959/25F/oil on canvas/개인 소장 민족기록화/1967/500F/oil on canvas/정부 소장 반월단지의 4월/1969/10F/oil on canvas 신라토기와 꽃/1970/50P/oil on canvas/일본, 개인 소장 접시꽃/1970/80M/oil on canvas/산업은행 소장 월남전 야전 병원(기록화)/1971/200F/oil on canvas/정부 소장 월남전(기록화)/1971/200F/oil on canvas/정부 소장 도시 주변의 閑家(한가)/1973/50F/oil on canvas 만추의 들녘/1974/30F/oil on canvas/홍익대 소장 탁상 위의 꽃들/1974/10F/oil on canvas 신라토기/1975/20F/oil on canvas/개인 소장 강변/1977/10F/oil on canvas/개인 소장 광나루의 초봄/1978/80P/oil on canvas/개인 소장 강화도의 마을의 봄/1978/10F/oil on canvas 일본의 농가/1979/8F/종이 위에 매직펜/개인 소장 들판 위의 봄/1989/20F/oil on canvas/개인 소장 7월의 산천/1989/10F/oil on canvas/개인 소장 강변의 이른 봄/1989/10F/oil on canvas 선유도의 어촌/1989/10F/oil on canvas 산간의 설경/1989/10F/oil on canvas 동해 어촌의 가을/1989/10F/oil on canvas ▣ 나의 작품세계 작품은 작가를 대변하는 언어기도 하다. 나의 작품은 그 대상이 대자연과 현실에 있다. 나의 상념과 작품상의 구상은 여기에 근원을 둔다. 작품은 자연현상의 추종이 아닌 나의 감정을 거친 주관적 표현에서 이루어진다. 거기엔 필연 기법이 수반된다. 기법이 결여된 화면은 작가의 감수성은 평가될 수 있으나 좋은 작품으론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 나의 경우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어려움을 겪는다. 한번도 순조롭게 이루어진 일이 없다. 엎치락 뒷치락 고민과 희열과 실망이 오가다 간신히 작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쳐서 버려뒀다 수개월 또는 수개년 후에 다시 참수하기도 한다. . 나는 작품할 때 우연이 있을 수 없다. 파고들고 또 파서 석공이 마치 돌을 쪼듯 성실하게 대처한다. 나는 새로이 그리기 보다 기존작품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경우가 많다. 작품 수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나는 나의 세계를 심도 있게 펴 나갈 것이며 세파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작품세계와 그 가치성을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 찾는 이 없는 고독의 세계라면 그 또한 숙명으로 볼 것이다. (장두건) . ▣ 사실 넘어 내적 비젼의 세계 장두건 화백하면 우선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독특한 사실주의 화풍의 회화 세계이다.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자신의 화풍을 지켜왔으며 칠순 중반에 접어든 만년에 이르면서 그 회화 세계는 더 한층의 원숙미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그는 이제 단순한 「사실주의」화가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사실적 묘법(描法)의 화풍을 하나의 독자적인 「양식(樣式)」으로 정립시켰거니와 장화백으로 하여금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인 작가적 위치를 누리게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일(李逸)-홍익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
09·09 |
그날 아마 비도 내렷었지..
기억도 가물가물~
중학교때 미술을 가르쳐 주시던 장두건화백님의 90세 기념전에서
성근 백발에 몸은 수척하셨어도 눈빛만큼은 형형하시던 노 스승님을
그때 처음으로 가깝게 만나 뵈었었지요.
그림에는 통~ 재주가 없었으니 (다른것도 물론 없지만서두)
보나마나
개발새발로 대충 떼우고 먼산바라기나 딴짓거리 하고 있기가 십상이었을테고..
자연
멀게만 느껴지던 선생님과의 거리였는데
한순간 5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정겨운 시간이었음을 기억합니다.
딸내미가 그림을 전공했으니 이건 순전히 왕서방 탓인지 덕인지 아리송송.
선생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입니다.
찬찬히 감상하시라고 올렸는데 저작권 청구하시면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