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서화 및 기타
서화 및 기타
Kakao
2012.06.18 13:38

Chicago 여행 #3 (끝)

조회 수 76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Chicago 수목원,  아네모네

 

5/27/12 (일)  

일요일 법회날 새벽 여섯시, 교도들이 일찍부터 모여와서 같이 기도와 좌선을 마치고 근처 공원으로 나가 숲길을 걸었다.

꽃은 다 졌는지 별로 없고 상수리 나무, 떡갈 나무 같은 큰 나무들로 에워싼 이른 아침 숲속은 서늘하니 상쾌했다.

양쪽에 숲을 끼고 있는 좁고, 한적한 길을 한 삼십여분 걷는데 내가 제일 앞장서서 신나게 걸어가니 다들 좀 놀란다.

 

가끔 개도 데리고 아니면 자전거 탄 산보객들을 만나면 " Good Morning' 인사도 나누고, 미소와 목례로 지난다.

교당에서 아침밥을 싸가지고 나왔기에 저 끝에 가면 밥상이 기다리고 있는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였다.

숲길이 번잡한 고속도로를 만나는 지점에 이르자 돌아서서 오던길을 다시 걸어나오니 넓다란 운동장이 있는 공원이 나왔다.

 

날씨도 화창한 공원의 정자에 앉아서 녹두죽, 찐 고구마, Duncan Donut, 커피, 과일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내일이 Memorial day 인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Picnic하고 싶은 사람들은 오늘해도 좋겠다.

내일 천둥치고 비가 올지 누가 아나?

한참 앉아서 먹고, 노닥거리면 좋겠는데 10시에 법회 시작이니 부지런히 교당으로 왔다.

 

남편이 특별 법설(法說)을 했다.  마이아미에선 늘 영어로 하는데 오늘은 한국 말이다.

이상스런것은 여기서 사십여년 살았어도 영어로 하는 법설은 전혀 감(感)이 오지 않는다.

한국말로는 한마디를 해도 머리에 싹 들어오니 늘 아쉬웠는데  오늘 여기선 한국어로 한다.


여기는 뉴욕이나 LA 처럼 영어 한마디 몰라도 살수있다.

 

어제 저녁 강의부터 심심해서 노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오늘 법설은 본격적으로 적었다.

Empty the empiness.  空까지 비워라.  이것이 진정한 해탈, 대 해탈, 대각(大覺)이다.

공(空) works wonders in daily life.

 

만유(萬有) 의 실상을 보라.  만유는 공(空)이다.

그러나 단공이 아니고 진공이다.  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시 태어난다.

 

진공; 여기선 텅빈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진공은 청정 열반 (淸淨涅盤), 묘유는 대 지혜라는 뜻이다.

진공과 묘유는 두개가 아니라 한가지의 양면, 양속성을 말한다.

진공묘유 (眞空妙有), 색즉시공 (色卽是空); 실 (實)이 있으나 실은 공(空)과 같은것이다.

실상은 연기법(緣起法) 에 따라 나타났다가 잠간 없어질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실재하는 모든것은 실상이 없다.   일체 존재는 모두 "공"이라는 점에서 다 같다.

 



물망초 




 이름 모르는 노란 꽃

 

 



 

반야는 Prajuna (지혜)의 음역. 열반은 반야의 결과, 반야 없는 열반은 없다. 반야는 능히 열반을 본다.

각자의 마음이 즉 불성 (佛性)이다.

원만청정한것이 부처님 마음.  생활속에서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할수 있을때가 열반. 반야와 열반은 二名同體다.

Buddha 란 "깨친 분 이란 뜻, 석가모니는 "우주 인간 세계를 깨친분"이란 뜻.

 

인생은 한마디로 苦다.   생노병사와 원증 애별.   탐진치(貪嗔痴), 삼독심( 三毒心)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그러나 삼독심도 불성이다.   일체 유심조 (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유식사상 (唯識思想)에서 비롯한다.

서양 철학에서는  인식론 (認識論); 마음이 참여. 모든것은 마음에서 나온다.

정각정행 (正覺正行)과 지은보은 (知恩報恩)이 alpha and omega of Won Buddhism.

 

오늘은 법회날이자 부처님 나신 날이라고 연등도 만들어 달고, 비빔밥에 야들야들한 쑥절편까지 특별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교도 훈련을 마무리 짓느라 분주했다.  저녁 5시쯤 훈련이 끝나면서 다들 둘러 앉아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내게도 차례가 왔다.

그동안 쌓이고 엉겨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 풀어 놀수 있을까?

원불교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었던 내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 이제껏 살아온 사연을 ...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낳은후에야 남편이 옛날 선비처럼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모르고 책에만 파묻쳐 사는 사람인줄 알았다.

물론 대학 교수직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서 발표해야하지만 원불교에 대한 연구, 번역, 논문 쓰는것은 끝도 없다.

 

아이들 숙제도 있고, Science Fair 같은 특별 Project 도 있어 조금은 관심을 보여야하는데 이 사람은 밤낮 자기일로 눈코 뜰새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노는것도 아니고 나는 나대로 직장에 나가 못된 상사와 늘 싸우고, 그야말로 밤낮으로 또 일하느라 정신없었다.

집에 와서 간신히 저녁해먹고 나면 눈이 저절로 감겨지게 피곤했다.

 

말하자면 밖에 나가 일해서 돈도 벌어오고, 밥도 하고, 아이들 공부도, 피아노도 봐주고... 이런것이 전부 내몫이였다.

하도 기가 막혀서 그렇게 불교 연구 할일이 많으면 혼자 산속에 들어가 실컷 할것이지 결혼은 왜 했느냐?

 

우리 병원의 중국인 약사 친구, Chan을 보면 밤낮으로 일을 열심히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아이들 어릴때는 부인이 일을 않고 집에서 애들만 기르는데 요리하는것에는 전혀 취미도 없고,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Chan은 집에 갈때 피짜도 사들고 가고, 종일 일한 사람이 저녁밥도 짓는다.

김치가 좋은데 어떻게 만드느냐고 내게 전화도 한다.

 

홍콩에서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하다가 결혼해서 왔다는 부인이 원래 똘똘한 아이들을 돌보니 둘다 성적이 뛰어났다.

한마디로 그 집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 기르고 사는 결혼 생활에 All In 해서 살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남자가 세상에 나서 아이 낳고 잘 살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좋은 불법(佛法)을 널리 세상에 알려 많은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는것이 더 의미있지 않느냐고.

이러니 나는 원불교를 곱게 봐줄수가 없었고, 점점 한(恨) 많고, 불평 많은 악처가 되어갔다.

이런 이야기를 잠깐 하니까 사람들, 특히 사오십대의 여자 교도들이 박수를 치고, 웃고, 이해가 가고도 남는단다.

 

저녁은 교도 한분이 근처 한식당으로 초대했다.

냉면에 콩비지 찌개, 순두부 찌개, 대구 찌개, 별것 다 시켜서 서로 나누어 먹는데 점심을 너무 잘 먹은 탓인지 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나보다 적어도 십여년 젊은 이곳 여자 교도들 십여명 사이에 끼여 앉아 벌린 이야기 판은 정겹고 아주 재미있었다.

 

한 사십대 쯤인 여자 교도가 옛날에 시카고에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미국 남자를 만나 학교도 다 집어 치우고 결혼을 했단다.

남편은 이곳 어느 대학의 생화학 교수로 있는데 아이들이 두명.

다 좋은데 이 남편이 전혀 뭘 치울줄 모르고 다 늘어놓아 속이 상한다.  그런데 이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따라 한다는 거다.

자기는 얼마전에 유방암 치료가 끝나 아직 직장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않고 있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 읽는다고  그동안 남편의 법설 많이 듣고, 세상 오래 살아본 내가 조언을 했다. 

화를 내는 것(진심, 嗔心)은 네 건강만 더 해칠 뿐이다.

그래도 넌 종일 집에 있고 남편이 유일한 Bread Winner 아니냐?

남편 따라 다니며 성심껏 치워주고 보살펴라. 

 

그러자 옆에서 누가 얼른 "밥 거저 먹잖아?"  하고 거들어주니 다들 깔깔 웃었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이 점에 매우 민감하다.

 

나는 계속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까지 아빠를 돕게 만들어야한다.

세상에는 웃기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데 그정도의 결점은 있으나 우선 마음 착한 사람 만난것을 큰 복으로 알고 감사해야한다.

 

이역에 살면서 오직 같은 종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주 이렇게 만나 웃고, 떠들고, 즐겁게 사는 이 사람들...  외로울 틈이 없다.   

나는 이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물망초

 





  Chicago 교당 앞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