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최동희 음악 선생님은 음악 시간에 모든 학생이 아무 악기나 가지고 와서
함께 연주하게 하셨다.
당시 모두가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들이라 바이올린,기타,하모니카,아코디온을 가지고 오는
친구도 더러 있었지만 우리 반의 경우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대나무 피리, 플라스틱(?) 우꾸레나를
200~250원에 사서 불었고 정지영은 아코데온을 몇몇은 하모니카를 불었다.
악보를 보고 자신이 무슨 악기를 다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음악에 애착을 느꼈다.
어느 때는 당시에 귀한 원본 고전 LP판 틀어 주시고 작곡가,성악가, 곡에 대하여 설명해주시고
감상케 하셨다.
공대 전기과 출신이신 매형이 직접 만드신 전축에 엿장수한데 산 나의 유일한 LP판을 매일 들었다.
Ravel "Bolero" , Rimsky Korsakov "Capriccio espagnol" 이었다.
처음엔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엿값을 주고 샀지만 들을수록 마음에 와닿고 푹빠졌다.
SP판은 홍근식과 신세계 4층에서 산 "의상을 입어라."와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항상 이 두 노래가 들리면 근식이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는 뒷자리에 앉은 윤상열이가 스페인 광시곡을 흥얼거려서 "야~ 너 그 노래 어떻게 알아?"하며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때까지 윤상렬이가 고전음악에 심취되여 있는 줄몰랐다.
항상 유도복 끼고 다니는 운동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고2때부턴 고전음악을 우리들에게 해설까지
해주며 고전음악의 중심에 서있었다.
최동희선생님은 반 전체 합창을 시키시고 지휘하시며 화음이 맞으면 흐뭇한 표정을 지우시곤
하셨는데 한번은 "후니쿠리,후니쿠라"를 신 나게 합창을 하는데 화음은 잘 맞는데 무엇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세히 가사를 들어 보니 뒷편 큰 녀석들이 "가자,가자, 집으로 가자, 드라쿠라,드라쿠라" 하며 신이 나서들 부른다.
가사야 어찌 되었든 화음이 잘 맞고 정말 신 나게들 부르기에 선생님은 눈치를 못 채셨는지 좋아 하셨다.
지금도 그 노래가 나오면 속으로 "드라쿠라~ 드라쿠라~"하며 음쪼린다.
그때 선생님이 들려주신 차이콥스키, 푸치니의 오페라 등은 항상 내 곁을 감돌았다.
김무일이가 요즘 쓴 "젊은 날의 음악 산책"을 읽고 불연 듯 떠오른 테너 유싱 비오링(Jussi Biorling)이
생각나서 유튜브를 검색하여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a stelle)등 그 때 들었던 곡을 찾아들어 본다.
선비 중의 선비이신 최동희선생님을 잊고 있다가, 또 졸업 후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고 소식도 못들은
선생님의 자제인 최광웅은 서울농대로 진학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지내는지도 궁금하다.
Jussi Biorling(1911-1960)
그는 Sweden에서 태어났고 유롭,미국 대도시에서 유명 오페라의 주역을 맡아
1940-50년대 "스웨덴의 카루소"라는불리우며 음악인을 매료시킨다.
1960년 3월15일 Lodon Royal Opera House에서 "La Boheme" 공연 직전에
경미한 심장마비(Minor Heart attack)이 왔는데도 관객 중에 여왕 어머님이 계신
사실에 힘이 생겼는지 그 날 공연을 그대로 소화했다. 초인간적인 행동이다.
결국 6개월 후인 1960년 9월 심장병(심장 확대증)으로 고국 스웨덴에서 49세란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뒤로하고 Stora Tuna,Sweden. 작은 교회 묘지에 잠들어있다.
July 2nd 2014. 홍경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