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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가 창건된 것은 고려시대의 일이다.



 

973년(광종 4) 중국의 영현(永賢) 선사가 이곳 오봉산에 절을 짓고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는 참선도량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백암선원은 폐사가 되었다.
 
1068년(문종 22) 지금의 춘천에 해당하는

춘주도(春州道)의 감창사(監倉使)로 부임한

이의(李의)는 오봉산의 빼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백암선원의 옛 터에

절을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이 대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이의의 아들 이자현(李資玄)이

이곳에 머물고부터다.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던 그는 뜻하는 바가 있어 벼슬을 버리고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이곳에는 도둑과 호랑이와 이리가 들끓었지만 그가

들어오자마자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자신은 문수보살의 진신을 두 번이나

친견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자현은 모든 것이 맑게 평정된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청편산(淸平山),

문수 보살의 큰 지혜로 불법의 가장 요긴한 뜻을 깨달아 얻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바꾸고, 많은 건물과 견성(見性),

양신(養神), 칠성(七星), 등운(騰雲), 복희(福禧), 지장(地藏), 식암(息庵),

선동암(仙洞庵) 등 여덟 암자를 지었다.
 
그 뒤 고려시대 말의 고승 원진국사(圓眞國師) 승형(承逈) 스님이 이 절에

와서 이자현의 유적을 찾다가, ‘능엄경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

이라는 「문수원기(文殊院記)」를 읽고 마음 깊이 감명을 받아, 이곳에

머물면서 『능엄경』을 공부하였다. 그 뒤 승형 스님은 불법을 선양할 때

언제나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았는데, 우리나라 선종에서 『능엄경』을

숭상하고 나아가 근본경전으로 삼게 된 것도 이자현이 문을 열고 승형 스님이

다시 천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절은 우리나라 능엄선의

근본 종찰(根本宗刹)로서 새롭게 부각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1327년(충숙왕 14) 원나라 황제 진종

(晉宗)의 황후는 불경과 함께 돈만 꾸러미를

시주하여, 그 이식(利息)으로 황태자와

와자들의 복을 빌고, 그들의 생일에 승려

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반승(飯僧)을 행하도록

하였다. 이 때 그 내력을 기록한 비를 세웠는데,

현재 비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익재난고

(益齋難藁)』권7과 『동문선(東文選)』 등에

「유원고려국청평산문수사시장경비

(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地藏經碑)」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367년(공민왕 16) 당대의 고승 나옹(懶翁) 스님은 공민왕의 청에 따라

2년 동안 머물렀으며, 8암자 중 복희암에서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이 절의 단향원(端香院)에 살았으며, 그 때 지은 시 6수가 『매월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1555년(명종 10) 당시의 판선종사(判禪宗事) 허응 보우

(虛應普雨) 스님은 왕명에 따라 청평사 주지로 부임한 다음, 2년 여에 걸친

대대인 중창불사를 이룩하였다. 스님은 능인전(能仁殿)만 본래의 것을 조금

보수하였을 뿐, 극락전을 비롯하여 회전문(廻轉門) 등 모든 건물을 새로 지

었고, 절 이름을 청평선사(淸平禪寺)로 바꾸었다. 현재 그 때의 건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 고메이사[光明寺]에는

1562년 보우 스님이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 문정왕후(文定王后) 등 궁중

일가의 성수를 기원하며 조성한 지장보살탱이 전한다.
 
조선 후기인 1711년(숙종 37)에는 당대의 대강백(大講伯) 환성(喚惺) 스님이

중수하였고, 1728년(영조 4)에는 각선(覺禪) 스님이 삼존불좌상을 조성하였다.

1861년(고종 17) 다시 불탔다가, 그 뒤에 중창하였다. 1900년에는 청평문

좌우로 행랑채 10칸을 연이어 세웠다. 그러나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때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을 비롯하여 대방, 산신각, 요사채 등이 소실되었다.
 
그 뒤 한동안 폐사처럼 남아 있던 이 곳에다 공철(空徹) 스님은 1977년

극락보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고, 향봉(香峯) 스님은 1979년 해탈문과

적멸보궁을, 서호(西昊) 스님은 1984년 요사와 청평루(淸平樓)·서향원

(瑞香院)을 다시 지었으며, 1988년 석진(石眞)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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