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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섣달 그믐날 (12-31-2010,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다니엘과 Skype로  한 30분쯤 떠들고 났는데 어디서 전화가 온다.
아이들의 옛날 피아노 선생님,  Ms. 나까시마가 5분후에 잠간 들르겠다는 전화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섣달 그믐날,  그 어머니가 만드신 모찌를 가져오는것이 틀림없다.
어제 "올해의  끝날,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날, 내일은..." 해서 웃었는데
오늘이 그믐인것을 그새 잊어버렸다.

 

이제나 저제나 벨 소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앉았는데 5분이 훨씬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 방에 있는줄 알았던 남편이 밖에서 무슨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상자 속에는 분가루를 잔뜩 뒤집어 쓴 아직도 따뜻한 동그란 모찌, 얇고 넙적하게 속 안넣은

커다란 모찌가 들어있었다.
알고보니 남편이 밖에 쓰레기를 내놓다가 나까시마를 만나 모찌를 전해 받은것이였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전화는 내가 받고 정작 사람이 나타났을때는 내다도 안본 꼴이 되어 버렸다.

 

얼른 가게에서 사온 구운 김 포장한것 세개를 들고 그 집으로 갔다.
나까시마는 볼일보러 나갔고 그 어머니가 나오셔서 오랫만에 문앞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식 구운 김을 전하고 그녀가 만들은 속이 안들어 그냥 하얀 모찌를 싸서 먹으면 맛도 있고
훌륭한 식사가 된다고  말해주었다.
전에 나까시마에게 일본 사람들은 속 안들은 모찌를 어떻게 먹느냐고 물으니 스프도 만들고, 어쩌고...   
대답이 분명치 않아 한국식 구운  김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까시마 어머니는  이런 김을 처음 보는 모양으로 무척 고마워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말랑 말랑한 흰 모찌를 잘라서 절반은 얼리고 절반은 구운김에 싸서 먹었다.
달지가 않고 쫄깃쫄깃한 모찌에 짭짤한 구운 김이 들어가니 맛이 있어 자꾸 자꾸 먹었다.
아침겸 점심으로  찰떡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를 지경으로 할일 투성이다.
  
오늘은 낮 12시에 기온이 화씨 72도, 밤에도 6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단다.
설날 몹씨 추워진다고 예보하더니 구렁이 담넘어 가듯 이야기가 슬쩍 바뀌였는데 아뭏든 반가운 소식이다.
오랫만에 해도 났겠다,  우선 난들을 죄다 끌어내서 비료 야간 섞은 물에 목욕시켰다.
요즘  날씨에 조금 신경써주는 것이 효력이 있는지 작은 싻도 나고, 어떤것은 잎에 윤기가 흐른다.
쭈그리고 앉아 비료를 탄 바께쓰 물에 일일히 담갔다가 꺼내자니 허리가 몹씨 아프다.

 

두어시간 걸려 난이 끝나자 부엌 바닥을 Comet로 닦기 시작했다.
하얀 타일이라 가끔 이렇게 닦아야하는데 이것도 쭈그리고 앉아 닦아내자니 보통 일이 아니다.

다 늦게 이게 무슨 고생인지, 내꼴이 영낙없이 수녀원에서 苦行을 하는 수녀 같다.     
Comet 만 잔뜩 발라놓고 커다란 걸레를 가지고 물로 닦아내는것은 남편 몫이라 얼른 불러냈다.

 

그런데 오늘이 섣달 그믐날이니 집안 청소를 하는 날이다.

묵은때를 없애고 집 청소를 깨끗히 해야 묵은 잡귀도 나가고 새해에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에 청소를 해서 내일이 치우는 날이지만 이번 주는 하루 당겨야 할것 같다.
가뜩이나 귀찮아진 집안 청소를 설날에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남편에게 오늘이 섣달 그믐, 청소하는 날이라고 했더니 "그~래?"

빨래도 다 해치우자고 빨래감 부터 내놓으란다.
벌써 세시가 넘은 시간에  둘이서 빨래 돌리고, 부엌 바닥 할것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지런히 청소를 시작했다.
행여 오던 福이 달아날까봐  둘이서 미친 여자 널 뛰듯, 거지가 젓 찍어 먹듯 부지런을 떨었다.
이십일후 Michigan의 올케도 온다고해서 더 신경이 씌였으나 겨울해는 짧고,

시간 부족, 力 부족으로 시작만 하다가  끝이 나버렸다.

 

New Year's Eve 라고 남편은 돼지고기를 구어놓고 자기는 위스키,  내겐 와인을 권했다.
뉴스가 끝나자  교육 방송 (PBS)에서 Tchaikovsky의  Piano Concerto #1, 그리고 Nut Cracker를 

orchestra 로 보여준다.  이게 또  웬떡인가?  횡재로다.
남편의 생떼같은 고집으로 새로 산 커다란 Flat TV로  보고있자니 꼭 홀에 앉아 있는것같은 느낌이였다.

 

표가 매진되어  청중으로 빈틈없이 꽉찬 커다란 홀에 오케스트라 멤버는 거의 100명은 되는지 ...

남녀노소, 국적 불문의 동양인, 서양인들 멤버로 만들어진 이 오케스트라는 옷도 제각각 입어 서민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팔십육세라는 백발의 할머니는 Harpsicord를 갈쿠리 같은 손으로 익숙하게 연주하고,

하프 소리는 天上에서 들려오는듯 황홀했다. 
 

밖에서는  밤 늦게까지 대포 터지는것 같은 불꽃놀이가 들렸다.
밤 11시 반,  나는 파티 끝.  Count Down 하는것은 이제 흥미가 없다.

눈썹이 세는것도 상관없다.
더 앉아 있으면 잠을 설칠까봐  얼른 가서 누으니 어깨, 허리, 팔꿈치, 손목, 안 쑤시는 곳이 없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넘어 잠이 깨었다.
드디어 2011년 설날 아침이다.
동쪽을 향한 커다란 창으로 새해 첫날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환히 비쳐 들어왔다.


"天地靈氣  我心定,  萬事如意  我心通,  天地與我  同一體,   我與天地  同心正"

 

새해 첫날, 예년과 꼭 같은 기도가 다시 새롭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