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좀 누그러진 2월 9일 아침.
베네트씨는 한달 예정의 여행으로 아리조나주의 Tuscon으로 떠났다.
떠나기전 토요일 아침에 Down the street라는 식당에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갑자기 긴 여행을 떠나게 되는 사연을 들었다.
고향친구 한명이 Tuscon에 사는데 back surgery를 하게되어 수술전에
정밀검사를 받던중 뇌에 종양이 발견되어 먼저 뇌수술부터 받게 되었고
수술후 회복할때까지 병원에 머물어야 하는데 회복기간 동안 그녀가 기르던
열네마리의 말과 여섯마리의 개와 다섯마리의 고양이와 수십마리의 닭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여 그가 기꺼히 그일을 맡겠노라고 약속하여 떠난다고....
다른 가족은 없냐고 물으니 평생 독신으로 지내서 아무도 없다고 한다.
젊어서부터 말타는것을 즐겼다는 베네트씨는 은퇴한 후에도 가끔씩 승마를 즐겼고
마굿간이 딸린 큰집에서 살다가 콘도로 이사하면서도 말은 팔지않고 친구네집 마굿간에 마껴
두고 수시로 들여다보러 다니다가 할수없이 다 처분한지가 몇년되었다.
한달 머무는 동안 말도 타보겠다고 자기 말안장을 가지고 간다며 한껒 들떠보였다.
이곳에서 아리조나까지도 무척 먼 거리여서 왕복 3000마일이 넘는다.
노인 혼자 그 먼거리를 드라이빙해서 가는게 좀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날씨라도 나빠지면... 눈이라도 쏟아지면.. 졸음이라도 닥치면...
그는 문제없다고... 라디오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운전할것이고..
가는 도중에도 해가 지기전에 숙소를 찾아 이틀이나 묵으면서 쉬엄쉬엄 갈터이니
걱정하지말라고 한다.
그가 떠난후 남편은 걱정스러운지 두어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소식이 깜깜...
분명 말타기에 몰두하여 정신없이 지낼꺼라고 생각했다.
2월 17일 아침, 베네트씨가 전화했다.
Tuscon에서 지내는 재미가 어떻냐고 물으니 느닷없이 같이 아침을 먹자고 한다.
아니., 집에 돌아왔느냐고 물으니 그렇다는 대답.
16일 저녁에 귀가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친구 Pam이라는 여인은 오랫동안 군인생활후 제대하여 아리조나에 정착했고
가축들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동믈을 기르는 습관이 차츰 병적으로 발전하여 사람과 가축을
별로 구별하지 않고 생활하는게 일상생활이 되어버린듯 하다..
마굿간과 붙어있는 작은 방 두개와 부엌 한개,, 욕실 한개의 시골집은 완전히 괴기영화에 나오는
세트같았고 도착한 날 ,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우니 건너편 천정에 매달아 놓은 선반위에서
세마리의 고양이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그르릉 거리는걸 발견했다고 한다.
침대옆 창문밖에서는 여섯마리의 개가 밤새도록 짖어대고...
Animal channel에서 보여주는 동물일화중에 Animal hoarding 에 관한 에피소드를 가끔 볼수있다.
관리를 못하면서도 무조건 아무 동물이나 데리고 지내다가 포화상태가 지나쳐 잘 먹이지못하고
씻기지 못해 병들고 결국 주인은 동물학대죄로 체포되고 동물들은 병원으로 실려가게되는 경우..
베네트씨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 것이었다.
젊었을때 기억속에만 있는 옛친구의 현재상황을 전혀 모르는채 도와주려는 마음만 앞섰던게
실수였다.
허허벌판 외딴집에 어디를 보아도 가게 한채 없고 20마일쯤 달려야 겨우 작은 동네가 나오는데
식당도 없고 옛날 서부영화에서나 보았던 식당과 술집을 겸한 salon 이라는 주막집이 한채...
겨우 하룻밤을 더 지낸후 할수없이 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하여 미안하지만 약속했던대로
한달간 동물을 돌보는 일을 못하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물으니 ...
간단한 대답, 자기가 不在 中일때마다 부탁하는 은퇴한 수녀님이 한분 계시니 그분에게 연락하여
대신 돌보아달라고 하면 된다고...
수녀님을 만나 간곡히 부탁하니 충분히 이해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분도 집안에는 너무 끔찍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먹이만 준비해주고 가신다고
집안에서 고양이들을 키우니 그들이 온갖 가재도구를 다 뒤집어 엎어 섷합마다 다 열어 놓고
이불이며 옷가지들은 모두 바닥에 흐트려뜨려 발딛을 틈도 없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베네트씨 생각으로는 그 친구는 뇌종양때문에가 아니고 동물들을 잘못 관리한 탓으로 얻은
온갖 균때문에 생명을 단축시킬것 같다고...
그곳까지 가는데 2박3일 돌아오는데 2박3일, TV도 없고 쏘파도 없는 헛간같은 집에서
이틀, 그렇게 들떴던 여행은 8일만에 허망하게 끝났다.
집에 돌아와 잘 정리된 침실, 자기 침대위에 누우니 너무 행복해서 눈믈이 날 정도였다고...
그 여행은 참 뜻깊은 여행이었네....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맞다, 맞어.... 축하하는 의미로 점심 초대.
카레라이스에 새우, 쌜러드로 셋이 점심을 먹었다. 지옥으로 부터의 탈출 축하!
마누라가 살아있었으면 그런 여행을 갈 생각조차 안했을텐데...라고 혼자 중얼중얼
하는 베네트씨....
악몽을 꾼거지 하니 ... 또 맞다, 맞어!
세상 참 넓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잘 지내지?
여기는 한달정도 앞당긴 날씨덕에 한낮은 완연 봄.
이대로 그냥 죽~욱 계속되다가 꽃피면 얼마나 좋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