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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
2021.08.20 10:14

시간은 변한다.

조회 수 99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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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모두 자기가 보낸 세월이 이세상에서 가장 격동기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세대만해도 일제식민지 때 태어나 조선어, 일본말을 동시에 배웠는지 무심코 

튀어 나왔던 일본단어들,  "혼다대(책장), 쯔봉(바지), 유단뽀(뜨거운 물 담는 양철용기)"등등

3~4살 때"모모다로상"이란 동요를 불렀다.

 

해방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아버님이 미군정청의 명에 따라 강원도 도지사서리로 발령 받고

춘천 도지사관사에서 너무 큰집이라 밤만되면 난 무서워서 밝기만 기다렸다.

다시 서울 삼각지에서 동숭동 서울대 관사로 이사 와서 창경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새나라의 어린이를 부르다가

6.25사변! 아버님의 납북!  네쪽으로 흐터진 가족, 아버님, 어머님은 병환이신 할머니,작은고모(수녀신분 숨기고),

어린 남동생을 보살피시고, 누님과 큰형은 둘만 용인으로 피난, 작은형과 나는 선산 산지기집으로...

 

시골 빨지산과 내통하는 빨갱이가 무서워 서울에서 어머님과 함께 지낼 구정때 할머님이 돌아가시어 

9살, 11살 작은형과 돈암동에서 관을 사서 새끼줄로 손잡이를 만들어 키가 작은 두 꼬마가 땅에 닿지 않토록

높이 들어서 성북동까지 오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피난길 마포에서 배를 타고 노량진 모래사장에서 밤을 새우고 수원까지 걸었다.

밤이면 미군의 폭격으로 자다 말고 반공호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공포에 쌓였다.

몇달후 만원인 기차짐칸에 실려서 대구에 도착하여 아버님을 만나 다시 부산으로

여관에서 삼사일 지내다가 아버님 친구분 초량동 집 방한칸을 얻어서 피난생활 시작.

2년반만에 서울로 환도하여 어린시절을 그런대로 잘 보낸다.

4.19혁명, 5.16혁명, 군대 졸병생활 꼭3년, 사회생활 6을 거처 미국이민(1976년 8월)

벌써 나의 인생 반 이상을 타국인 미국에 살고 있으니 내가 살아 온 시절이 격동기 아니고

무엇인가?

 

타의에 의한것이 반이고 내가 택한 세월이 반이상이라 후회는 없다.

일 할때는 열심히 일하면서 주말이면 가족과 여행 다니고 은퇴 후에도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곳을 

찾아서 많이도 다녔다.

요즘은 펜다믹 때문에 못 다니지만 옛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다시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다.

 

항상 웃음기를 머뭄고 사시는 노파에게 물었답니다.

"어떤 인생이 가장 좋은 인생이라 생각하십니까?

"흥~ 자기가 돌아봐서 웃움짓게 하는 인생이지~"

"그리고 가장 멋진 부모는 명예, 돈을 물려준 사람이 아니라 자식한데 존경 받는 사람이다."

 

*다음 사진을 5년 전에 집에서 2시간 떨어진 해안가에서 찍은 것이다.

 

23194823_23.png

Shark Pin이라 곳이다. 가운데 바위가 그렇게 생겼다.

옆바위 아래에 큰구멍이 있다.

 

22204720_2.jpg

조수 때 물이 파도가 되여서 들락거린다.

22204720_4.jpg

같은 한지점이지만 순간적인 시각에 따라서 그모습이 변한다.

각 순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22204720_5.jpg

자기가 어떻게 그순간을 사는가에 따라서 다른것 처럼.

22204720_9.jpg

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고 있나요.

거품이 많아서 풍요할까요? 근심이 많을까요?

필요한 만큼에 만족하면 투명해지고 선명하게 보이지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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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옥 2021.08.21 06:13

    꼬쓰까이, 시아게, 다라이, 빤쓰, 우와기, 빠가야로, 다마네기, 벤또 ... etc.
    일본에선 외국어가 들어오면 그것을 발음나는 대로 그대로 써서 일본어를 만듭니다.

    특히 영어는 다 그대로 일어로 표기해서 씁니다.
    "가다가나" 뜨덤뜨덤 간신히 읽어보면 일어로 표기한 영어가 나옵니다. ㅎㅎ.
    일본 젊은 애들은 한자가 어렵다고 섞어 쓰는데 대한 불만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해졌어요.
    영어, 불어 같은 단어를 그대로 한글로 쓰고 있는 걸 많이 봅니다.

    그 대신 일어는 제가 떠날때 (1968년) 비하면 거의 다 없어졌는데 어느땐 저혼자 일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배추를 커다란 다라이에 담아 씼었다." 등등.
    이럴때 양동이란 한국어는 외국어처럼 생소해서 안쓰게 되는데 이럴때 한국을 떠나 살았다는 표가 납니다.

    우리만큼 어려서 격동의 시대를 겪은 사람들도 흔치 않치요.
    다행히 크면서 그래도 나라가 안정되어 복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초창기는 어려웠으나 평온한 말년. 그 반대로 가는것보다는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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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삼 2021.08.25 07:00
    해방 직후 말 배울 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익힌 말이 생각납니다.
    미군이 아프칸에서 패배?하고 도망 친것을 보고서
    "믿지마라 미국, 속지마라 소련, 일어선다 일본"

    맥아더 장군이 6.25 터지고 3일?후 비밀리에 한국 방문시
    한국, 일본을 미국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을 그의 첫 말에서 알 수 있다.
    "한국이 공산화가 되면 일본은 어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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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자 2021.08.21 15:02

    장장 80년 이상을 살아온 인생사
    사람마다 구비구비 굴곡진 이야기가 어디 한두줄로 정리가 되겠는지요

    흔히들
    '내 지나온 시절을 책으로 쓰면 몇십권은 겨'

    네~
    그렀습지요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다' 라는 말도 있고
    '복중에 복은 늙복이 최고다' 라는 말도 있고
    아직 우리 인생은 현재 진행중이라는거

    '이만만 해두 잘 살아온거지'
    그리 생각하려구 합니다
    .
    .
    .
    시방 맹추댁 중언부언 뭔소리를 하구있는겁니꽈?

    가을장마 시작
    지금 정능에는 흐리고 비 가끔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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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삼 2021.08.25 07:08
    깍기고 깍긴 돌이 더 아름답지요.
    힘든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 행복한것과 같지 않을까요?

    귀여운 지금 귀엽기 보다 뜸직한 손주를 보며 앞날의 희망을 봅니다.

    지난 주 등산을 하는데 순영 왈 "벌써 가을 기분이 드네요"
    "가물어서 나무 잎, 풀이 모두 말라서 그렇게 보이는거야."

    미서부지역 앞으로 식수를 걱정해야합니다.
    각 저수지 담수량이 30%에 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