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어느 기인지 난타 공연. 그런데 옷을 제각각 입어서 아직도 연습중인 느낌. That's not good.
선농 합창단의 합창, "새가 날아든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 노래들이 별로 재미가 없다.
동생, 병한이. 앞에 나가 겨우 이 사진 하나 찍었다. 이희자는 뒷쪽에 있어 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다.
13회, 남녀 학생들 단체 사진. 가까운데 놓고 생각나면 가끔 보려고 빌려왔다.
여학생들 사진. 주책없이 내가 제일 신이 났다.
해외 동포 여학생들 한컷. 미국 사는 딸네집을 풀 방구리 쥐 드나들듯하는 홍경자도 붙여주기로 했다. ( 산지기님, 사진들 고맙습니다.)
우리 동기들을 위해 애쓰는 삼총사
"좀 이쪽으로 앉아봐." 이번엔 현작가도 출동.
'우정. 아름다운 동행, 졸업 55주년 기념' 현수막이 드디어 올려졌다.
5/1/2016 (일), 선농 축전
무려 70주년째가 되는 선농 축전 날이였다.
아침엔 금방 비가 올것처럼 흐렸다. 그리고 쌀쌀했다.
창문이 꽉 닫힌 집안에선 날씨를 잘 모르겠어서 부엌뒤 골방의 문을 조금 열어 놓은 곳에 손을 대보았고, 병한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가 물었다.
낮 최고 기온이 섭씨 21도까지 올라간단다.
티셔츠 속에 얇은 런닝 셔츠같은 속옷 하나 더 입고 오늘의 지정복, 빨간 방풍 자켓을 입고 떠났다.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한것 같았다. 겁이 나서 아직 집에 있는 병한에게 전화를 했다. 그애는 나올때 걸칠 옷 하나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언니, 병한, 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순옥은 다 느릿느릿, 10시나 11시쯤 대어 가자고 하는데 난 그렇게 기다릴수가 없었다.
이번이 4년만에 다시 한번 가보는 건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놓치기는 커녕 일찌감치 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었다.
해외동포들 마음은 다 같아서 금성 빌리지의 친구들도 9시에 대어 간다고 했다.
결국 다 각자 따로 따로 가기로 결정이 났다.
사평역에서 9호선 타고 고속 터미날에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음엔 교대앞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낙성대까지 가는데 1시간 가량 걸렸다.
4번 출구로 나가 직진, 첫번째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 가면 마을 뻐쓰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른쪽은 차들이 쌩쌩 다니는 큰길로 골목이 없었다.
대신 왼쪽에 꽤 큰 골목이 있는데 마침 뻐쓰가 하나 서있다. 듣던대로 02번 마을뻐쓰였다.
그래도 못 미더워 길에 서있는 잘 생긴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알고 보니 사대부고 한참 후배로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였고, 그 뻐쓰가 맞다고 한다.
뻐쓰를 타려는데 차안에 능숙이와 미숙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잘 찾아 왔구나. 이제 아무 걱정 없다.
오전에 좀 서늘하던 날씨는 낮이 되면서부터 점점 맑아지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른 봄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날씨는 더없이 쾌적했다.
날짜를 이르게 잡아선가 내가 다녀본 선농축전중 가장 선선하고, 괜찮은 날씨였다.
아침에 좀 쌀쌀하기에 이런 날씨 익숙치않은 내가 지레 겁을 먹었는데 병한이 나중에 들고 온 옷까지 껴입기엔 너무 더운 날씨였다.
극성이라 소문난 우리 13회는 특별히 55주년이라고 한 60 여명 모였다는데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시집 잘간것 보다 이렇게 좋은 학교 다녔던 것이 더 다행이라고 웃고, 떠들었다.
다같이 힘을 합쳐 '아름다운 동행 55주년' 현수막(?)까지 걸어 놓았으나 So what???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11회 언니네도, 12회도, 아니, 14회까지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11회에선 언니를 열심히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혼자 오기 어려워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런줄 알았으면 내가 일찌감치 가서 같이 오는 건데 많이 미안했다.
우리는 지난번 같은 꼭지점 댄스도, 샤방샤방도 없으니 그냥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무대는 저 멀리 있고 관중석은 전부 그냥 평평한데 우린 또 직각 방향으로 한 옆에 앉았으니 뭘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병한이 합창할때만 나가서 동영상을 찍었으나 노래도 내 취미가 아니고, 다른 후배들의 난타, Flamingo dance 같은 푸로그램도 별로다.
이렇게 어렵게들 모였는데 그냥 다들 한번 모였다는데 의미가 있는건지? 재미는 하나도 없었다.
옛날에 아이들은 어리고, 나는 밤낮 일하느라 올수없었던 때가 선농축전의 전성기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전화로만 전해 듣는데 14회가 '강강수월래'도 하고 '백조의 호수,' 또 까만 쓰레기 Bag 뒤집어 쓰고 영화 'Sister Act'를 흉내냈다고.
나는 또 사대부고 형제가 다섯이나 되니 각자 기에서는 뭘하는지 사전 정보를 얻는 스파이하기 딱 알맞았다.
장난으로 이말을 했더니 언니는 자기네 춤 연습장에 나를 절대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괜히 한번 해본 소린데 언니는 그말을 딱 믿었다.
점심 시간이 왔다. 도시락이 나왔는데 중간에 커다란 닭다리, 또 그옆에 큰 쏘세지가 하나 있고 김치는 말 막음으로 한 숟가락 정도 간신히 들어있다.
크게 실망했다. 우리 기가 주문한것인줄 알고 암말도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권금자가 '고추장, 고추장' 하면서 고추장을 애타게 찾는다.
바로 옆 14회, 연녹색 사이다 병에 고추장이기엔 좀 묽은 뻘건 액체가 보이기에 조금만 꾸어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후배라도 입이 안 떨어져서 거기 내 고종 사촌 동생을 보면 부탁하려고 열심히 찾았으나 어쩐일인지 그애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총동에서 도시락을 주문했다고 해서 맘 놓고 불평을 했다.
내가 늙어서 그런가 무슨 한국 사람 도시락이 그 모양이냐?
옛날에 그 무말랭이 장아찌, 계란말이, 멸치 조림, 콩자반, 소고기 장조림 같은것으로 맛있게 싸던 도시락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내 기억에 2012년에 왔을때부터 한국 도시락은 이렇게 우습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햄버거에 쏘세지에... 지방질 가득한 한국 도시락에 깜짝 놀랐다.
2011년 선농축전까지만 해도 도시락은 너무나 황홀했다. 옛날식 반찬에다 겉절이도 좀 들어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민것이 Beyond imagination!
도시락이 너무 커서 허연 쌀밥 절반을 그대로 버리게 되는 것만 아쉽게 생각했다.
재미 하나 없이 하루를 보내고 '오인자 아구찜' 이라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잘 먹었다.
아구찜에 생선 찌개까지 딱 내 식성이라 아구, 아구 잘 먹고 남은 아구찜 한 공기까지 내가 싸가지고 왔다.
식사후 노래방은 아예 없고, 식당에 온 사람들의 숫자도 5년전에 비해 한 절반이나 될까?
'누가 뭐래도...' 우린 이제 정말 늙었다.
Modigliani 가 그린 Jean Coct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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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하는 우리들의 현주소
쓰러지고보니 더욱 절실하게 와 닿네
우리들의 아름다운동행은 아직도 진행중
여행기 계속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