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3일 수요일
13동창회의 6월 행사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람과 [홍난파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하여
1945년 해방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해방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준화운동을 한 인사들이 대거 수감되는등
한국근대사의 굴욕을 안고있는 상징적 장소인데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과거의 아픔과 극복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서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자주독립정신과 자유평화수호정신을 기리는 교육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슬픔과 굴욕과 한이 서린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나라사랑의 길이 무엇인지
한번쯤 되돌아 보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54명의 친구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한
살벌하고 끔찍한 감옥을 관람하는
전쟁을 모르는 젊은세대들이 깨우치고 느끼는 현장이 되기를 바램해봅니다.
절로 숙연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를 위해 여러모로 애쓰신
동창회와 문수회 그리고 소리내 모든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맹워리가
형무소주변 독립공원부터 둘러볼까요?
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하지요
독립공원 입구의 [독립문]
송재 서재필님 동상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옛 모화관(慕華館) 건물을 본따
1897년 5에 독립협회에서 독립관으로 개축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97년에 다시 지었다.
독립선언기념탑
뒷편에 독립선언문과 33인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앞의 조형물은 조각가 김종영(김정혜동문의 아버님)의 작품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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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約三章(공약 삼 장)
-.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여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순국선열충혼비
어르신 한분이 조의를 표하고 계십니다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가족이 건립기금을 내어 지은 도서관도 있습니다.
우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주변을 둘러보면
'감옥' 하면 높고 긴~ 담장이 떠오르지요
요즘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곳
일찍와서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시간이 되었으니 관람을 가야지요
전시관으로 들어가서
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습니다
수감자들 사진으로 사방 벽면을 빼꼭하게 채웠습니다
채광이 잘 되게 지어진 옥사
이곳에 걸린 태극기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순직하신 165명의 이름을 새겨놓은 조형물
잠시 묵념을 하였습니다
사형장 입구의 '통곡의 미루나무'
형무소 견학 온 기념입니다 찰칵~
독립문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
신박사랑 다정하게 나도 한장
기룽이와 상마니
길을 건너 [홍난파의 집]으로 갑니다
김도현씨가 참석했더라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되었습니다.